하늘부모님성회 평화축제 ‘당신은 기쁨입니다’

하늘부모님성회 평화축제 ‘당신은 기쁨입니다’ / 천일국 9년 천력 5월 18일 (양. 2021.06.27)

[본부장님 환영사]
“하늘부모님성회 평화축제”에 오신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애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먼저 오늘 두 번째 “평화축제”에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이 평화축제에는 “하늘부모님성회”의 축복가정, 식구뿐만 아니라, 새롭게 오신 평화애원분들이 이곳 천원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아시아 등 각 국가와 대륙에서 인도자들과 함께 40여만명이 생방송을 통해 비대면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모두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큰 환영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박수)

사랑하는 평화애원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개인의 사소한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 일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는 보다 행복지려는 삶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행복”은 자기의 욕망 가운데 본심에 따라 선을 추구하는 욕망이 충족될 때 느끼게 되는 “본심의 기쁨”입니다. 이렇듯 “기쁨”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우리 모두는 기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으로 기쁠 때 진정으로 행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은 우리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도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창조가 끝날 때마다 보시기에 “선하였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만물이 하나님의 “선의 대상”이 되어 그 만물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창조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당신의 형상대로, 당신의 자녀로 창조한 인간을 통해서는, “생육하고 번식하여 만물세계를 주관”하는 3대 축복완성을 통해,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함께 기뻐하는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이상이 실현된 “천일국”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소원을 몰랐던 인간 시조의 타락으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했던 당신의 자녀도, 당신의 만물도 잃어버렸습니다. 흔히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어느 한 순간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다면 부모로서 그보다 고통스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당신의 자녀인 인류를 잃어버리고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봉두난발한 채 역사를 헤쳐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기쁨의 하나님”이 아니라 “슬픔과 절망, 한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도 본연의 부모를 잃어버린 천애고아와 같은 입장이기에 서로가 한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종족간, 민족간, 국가간, 서로 정복하고 서로 빼앗고 서로 죽이는 불행과 갈등의 인류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아시는 참어머니이시기에, 평화의 어머니 한학자 총재님께서는 일년에도 지구를 수십바퀴 돌며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오지도 상관않고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입안이 헐고, 다리가 붓고, 서있을 수 조차 없는 어려움이 있어도 쉬지 않고, 세상의 가장 낮고 가장 구석진 곳들을 미친 듯이 다니며, “하나님”을 “하늘부모님”으로 알고 모시게 하기 위해 일생을 달려오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너무도 고통스러운 고난의 삶의 연속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살아오신 삶이었기에 한학자 총재님께는 모두가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은 “희생의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평화의 어머니께서 베푸시는 두 번째 평화축제는 이러한 “기쁨”을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한학자 총재님 자서전 <평화의 어머니> 327페이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부모를 잃어버린 인류가 6천년 만에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종교를 갖는 것은 이런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평화축제를 통해 6천년만에 본연의 부모를 만나는 가장 기쁜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특별히 이 평화축제의 주최자되신, 평화의 어머니 한학자 총재님께서 함께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참어머님께 큰 감사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박수) 우리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트) “사랑합니다”라고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 둘, 셋)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평화의 어머니 덕분이 우리 모두가 기뻐졌습니다. “평화의 어머님”은 “기쁨의 어머님”이십니다.

제가 오늘 이 평화축제에 새롭게 오신 평화애원분들에게, 그래도 축제인데 무슨 선물을 드릴까 고민하다가, 역시 축제의 꽃은 노래이기에 지난 첫 번째 평화축제에 이어 이번에도 부족하지만 “바램”이라는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특별히 이 노래는 한학자 총재님 참어머님께서 사랑하시고 저희들이 부를 때면 기뻐게 들으시는 노래입니다. 그 가사를 음미하면, 일생을 통해 참사랑의 희생적, 헌신적 삶을 살아오신 평화의 어머니의 희생적 삶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에 녹아 있는 하늘부모님의 심정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과 심정의 우리들의 삶과 심정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주 특별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오늘 평화축제의 엠씨들입니다. 오늘 평화축제의 엠씨는 하늘부모님, 참부모님의 결혼축복을 받고 태어난,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의 기쁨의 2세들입니다. 그리고 둘 모두 또다시 결혼축복을 받고,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의 “기쁨”을 위해 공직자의 길을 걸어가는 부부 커플입니다. 여러분! 큰 박수로 맞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철우, 한유경 2세 축복커플입니다.


[효정증거] 조명철 19대 국회의원

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조명철입니다. 제가 국회의원 할 때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 울보 국회의원. 뭔가 말을 하려 하면 감격에 복받쳐 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눈물이 납니다. 오늘 이렇게 하늘부모님성회 평화축제에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저를 이런 영광된 자리에 초정해 주신 하늘부모님성회 회원님들과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좀 아시는 분들이 좀 있겠습니다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간단히 소개를 하는 게 인사인 것 같습니다. 여기계신 분들과는 다르게 고향은 평양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평양시 만경대 구역 아닙니까. 제 고향이 바로 만경대 구역입니다. 제가 북한에 최고위직 자녀들만 다니는 평양남산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박사원을 졸업하고 그다음 날에 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원으로 임명이 되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 후에 중국에 교환 프로그램을 나갔다가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우리나라 3대 경제연구소 중에 하나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근무를 하고 또 특이하게 북에서 온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의 신임과 배려에 의해서 통일교육원장이라는 최고위직 공무원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도 하고 지금은 선문대학교 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참 복 받은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태어나서부터 유년시절 청년시절 성인 지금도 늙어서도 두 분을 언제든지 볼 수 있고 두 분의 말씀과 사랑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그런 축복 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요 32살에 처음으로 문선명 선생님, 한학자 선생님을 뵙어요.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만남일지는 몰라도 그때 저의 충격은 너무 컸습니다.

평양에서 김일성대학교 교수로 있을 때 그때에 저희 부모님이 건설부 장관을 하셨죠. 문선명 선생님이 평양 다녀가신 이후에 김일성 주석이 장관들을 모여 놓고 그 얘기를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요.

사람이 얼마나 대담하고 담대하면 그런 용기와 말씀을 하실까, 이게 첫째입니다. 제가 한국에 오고 제3국에서 살 때, 북한을 욕하는 사람, 비판하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제가 평양에 살 때 북한 체제가 잘못되고 사상과 이념이 잘못됐다고 최고위층 앞에서 당당히 얘기하시는 그런 분들 못 봤습니다. 수많은 대통령, 수많은 정치인들, 수많은 기업인들, 심지어 NGO를 한다는 분들까지 평양에 오면 마음이 쪼그라들고, 오히려 비판은 커녕 찬양하다 오는 모습들은 수없이 많이 보아 왔습니다. 공산주의 이념 잘못됐다, 주체사상 잘못됐다, 이런 담대한 얘기를 북한의 최고위층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당당히 말씀하시는 그분이야 말로 얼마나 대담한 분일까. 얼마나 담대한 분일까.

그리고 제가 그분을 보면서 또 한 가지 느낀 것이 사랑입니다. 모두가 북한을 비판하고 욕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죽여라 죽여라, 이러고 있을 때 문 총재님 안된다고 하시고 잘못됐다고 하신 분이 평화 번영으로 함께 가자고 하실 때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전개된 사업들을 보면 금강산 사업, 자동차 사업, 호텔 사업 비롯해 가지고 다양한 경제협력사업들이 전개되지 않았습니까? 평화와 번영, 사랑이 없으면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이런 분입니다.

또 여러분들 아셔야 합니다. 그때 한학자 선생님 처음 봤어요. 어떻게 그렇게 맑고 깨끗하고 얼굴에 광채가 나는지 평양시민들이 열광했어요. 사람의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분의 그 깨끗하고 맑고 광채 나는 용상, 그걸 보면서 얼마나 사랑이 넘치시면 저런 티 없는 맑은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모습을 여러분들은 마음껏 보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 주민들은 그걸 못 보고 있습니다. 말씀은 많이 안 하시지만 얼굴로 말씀하시는 그분, 제가 이 두 분이 너무 좋아서 이분들이 뭘 하신다면 꼭 행사에 옵니다. 정말 인간적으로 보면 광팬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문선명 선생님께서 성화하셨을 때 앞길이 막막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용운 선생의 시, 님의 침묵이란 것도 몇 번 읽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님은 갔지만은 나는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외웠어요.

그분이 가셨으니 북한과 같은 어두운 곳에 누가 사랑을 주고 빛을 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전개되는 일들을 보면 ‘야, 우리 어머님 최고구나! 대단하구나!’ 문선명 선생님의 뜻을 계승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창조하시고 더욱 발전 나가시는 오늘의 이 현실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 지도자들 모아 놓고, 평화, 번영, 통일, 이런 걸 설득하고 주도해 나가시는 것을 보세요. 정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학계 학자들 모여 놓고 이런 행사, 이런 설득, 이런 사랑을 주는 곳이 특히 최근에 보기 힘듭니다.

하늘부모님성회 회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 행복은 어머님이 만드신 것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미래가 밝고 기쁨으로 넘쳐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님이 계셔야, 그리고 건강하셔야 북한과 같은 정말 어두운 곳에 밝은 빛이 비칠 것이다 생각합니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어머님 따라갑시다. 고맙습니다.


[효정증거] 김수만 KCLC 공동의장

할렐루야! 하나님 창조주를 찬양합니다. 평화축제에 하나님의 사랑과 주시는 은혜가 넘치길 바랍니다.

2019년 12월에 미국에서 세계 기독교 성직자 협의회 WCLC 창설 후에, 이스트가든에서 한 총장님께서 한국 목사님들을 초청을 하시고 말씀 주실 때, 이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총재라고 부르지 말고 어머니라고 부르시오.’ 이렇게 요청을 하셨습니다.

저는 최근에 발간이 된 『평화의어머니』 라고 하는 자서전을 통해서 말씀에 새롭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왜 평화의어머니이신가? 요즘 펼치고 계시는 희망전진대회를 통해서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한민국 기독교 성직자 협의회 KCLC의 의장으로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 신통일 한국의 완성의 기독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느낍니다.

인생사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에 한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허락하신 이 땅은 아름다운 금수강산 한반도입니다. 우리 민족은 조상 대대로 이 한반도의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열강의 이념적인 갈등으로 일시적으로 두 동강이 난 것도 크게는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인류의 고통, 세계의 고통에 동참하게 하셔서 세계 평화에 우리를 쓰시려고 하십니다. 다루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다시 모으시는 통일은 하나님 중심의 신통일한국이라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평화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헌신하며 힘써 왔습니다. 평화의 어미니 한학자 총재님께서는 지금까지 평생을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 매진해 나오셨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루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한 달 하기는 좀 더 어렵고 1년 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평생하기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단에 서실 때마다 사람들에게 평화를 호소 하시면서 눈물 흘리시는 모습에서 진지함과 뜨거운 열정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화평에 사명을 감당해 나가시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평화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의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에 대해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정작 이 일을 행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가능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기는 합니다만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 평화에 대한 열정이 그리 뜨겁지 못합니다. 그러나 평화의어머니 한학자 총재님은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 인류 평화를 위한 하나님께 받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일을 이루기 위한 능력도 갖추고 계십니다. 한학자 총재님은 하나님께 받은 화평의 사명을 가지고 평화를 사랑하며 인류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평화의 어머니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국의 KCLC는 미국의 ACLC 세계의 WCLC와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과 사명을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저는 평화의 어미니에게서 하나님의 기쁨의 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일전의 UPF 문연아 회장님, 이현영 회장님, 홍종현 사무총장님과 함께 평화의 어머니에 대해서 담화를 하던 중에 이 찬송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이 찬송을 한번 불러 보겠습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부대가 되게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아멘!!


[효정증거] 야마시타 루미코 가정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원도 영월에서 사는 야마시타 루미코라고 합니다. 제2회 평화축제 이 뜻깊은 자리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걸어온 삶의 일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되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1997년 11월, 참부모 되시는 문선명 한학자 총재님 양위분의 주례로 거행된 4천만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 받고 4년 후인 2000년 2월, 한국에 왔습니다. 무척 추웠던 겨울날로부터 벌써 2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저의 남편 윤태영씨와 의젓하게 자란 스무살과 스물한 살된 두 아들, 그리고 시부모님까지 이렇게 3대가 한 지붕 아래 한 햇살을 받으며 오순도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저희 집 외양간에는 우리의 또 다른 가족인 35마리의 튼실한 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지금 저희는 삼대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시부모님의 부모님도 계셔서 4대가 같이 살았습니다. 정말 엄청나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은행에 다니며 부모님과 4남매 여섯식구로 살았던 저로서는, 4대라는 대가족의 규모와 가족의 끈끈한 정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저는 그

사랑과 정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첫째 아기를 가졌을 때였습니다.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시할아버지께서는 직접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건빵을 사 오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외국인 손주 며느리가 한국 생활 시집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 할까봐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 하시며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저는 깊이 감사함으로 따뜻한 추억을 더듬게 되었는데요. 시집온 지 4년째 되던 날, 할아버지께서는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할머니를 돌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할머니께서 갑자기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고, 무릎도 좋지 않게 되어 일어설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거기에 더해, 치매까지 앓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제 첫 번째 일은 대소변으로 엉망이 된 할머니의 방을 치우는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치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시어머니도 할머니 때문에 많이 힘드셨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할머니는 3년을 지내시다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이후 저는 가족의 사랑과 참된 기쁨을 마음의 주제로 새기며 좀 더 깊이 신앙의 집중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 참부모님께서 주관하신 40일 여수 해양수련을 통해서 마음의 주제로 삼은 삶의 기쁨에 대해 더 깊은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2014년부터 5년간 저는 영월교회 선교사회 리더를 맡았고, 지금은 제직회 회장을 하면서 여러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작은어머니 추천으로 영월군청에서 군수님으로부터 효부상을 받았고, 노인회장님 추천으로 영월향교에서도 효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귀한 효부상을 받았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많은 부족함을 갖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말도 여전히 서툴고 많은 문화적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가정을 넘어, 이웃과 사회에 인정을 받아 일본으로부터 받은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적 아픔이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면 저는 백 번이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1년은 정말 많은 사연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축복가정의 이름으로 가정과 이웃, 사회에 참된 기쁨을 전하기 위해 저는 사랑을 실천하는 수고의 길을 가면서 엄마가 걸어온 그 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2세 아들들도 키워내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가정예배를 보며 우리 부부가 세상에 참된 기쁨이 되기를 늘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강원도 영월에 더 많은 가정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하며 백마디 말이 아닌 의미 있는 삶을 통해 축복결혼의 가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참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저의 시부모님을 모실 것입니다. 하늘부모님을 사모하듯, 남편을 똑같이 사랑하며, 곧 군대에 갈 큰아들과 동생이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미래가 되고 저의 부부처럼 아름다운 축복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사랑으로 교육해 나갈 것입니다.

저는 참부모님께 축복받은 축복가정으로서 작은 기쁨이지만, 이 시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참부모님께 영광의 기쁨을 올리며 이상으로 저의 효정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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